정보화마을 연천 38선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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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재_우리마을의 문화유산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

    임진왜란 초기의 장수'박진장군묘'

    무신집안 출신 밀양부사 박진장군묘

    1560(명종15)∼1597(선조30). 조선 선조때의 무신, 본관은 밀양, 자는 명보, 아버지는 인수이다. 무신집안 출신으로 비변사에서 있다가 1589년 심수경의 천거로 등용되어 선전관을 거쳐, 1592년에 밀양부사가 되었다. 같은 해 4월에 왜적이 침입하여 부산 동해 등이 차례로 함락되는 와중에서 작원으로 나와 적을 맞아 싸우다 패하여 포위되자, 밀양부를 소각하고 후퇴 하였다. 이후 경상좌도병마절도사로 임명되어 나머지 병사를 수습하고 군사를 나누어 소규모의 전투를 수행하여 적세를 저지하였다.

    경주성을 공략하여 탈환

    같은 해 8월 연천의 민중이 의병을 결성하고 영천성을 근거지로 하여 안동과 상응하고 있었던 왜적을 격파하려 하자, 별장 권응수를 파견 그들을 지휘하게 하여 영천성을 탈환하였다. 이어서 안강에서 여러 장수들과 회동하고 16개 읍의 병력을 모아 경주성을 공격하였으나 복병의 기습으로 실패하였다. 그러나 한달 뒤에 군사를 재정비하고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여 경주성을 다시 공략하여 많은 수의 왜적을 베고 성을 탈환하였다. 이 결과 왜적은 상주나 서생포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고, 영남지역 수십 개의 읍이 적의 초략을 면할 수 있었다.

    박진장군부인 박진장군부인
    외적과 싸운 두드러진 장수 이와 같은 전공으로 선조로부터 양피의를 특별히 하사받았고, 가선대부에 올랐다. 당시 피난중에 행재소의 호위문제를 중시하고 있었던 선조는 그의 전과를 감안하여 그를 불러올려 부원수로 임명해서 여러 장수들을 독전시키려고 계획하였다.

    그러나 조신들은 그가 각 도에서 두드러진 전과를 거두고 있고, 영남을 회복한 것도 그의 공이므로 민심을 고려할 때 불가하다고 상주하였다. 임진왜란 초기 왜적과 싸운 장수 가운데 두드러진 인물의 하나였다.

    문화재명 : 박진장군묘(朴 晋 將軍 墓)
    지 정 별 : 기념물 110호
    소 재 지 :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 산149-2
    지 정 일 : 1988. 12. 2
    문화재현황
    보호구역 : 3,000
    지정면적 : 1,200㎡
    봉분수량 : 총 1기
    (자료출처 : 연천군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