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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를 벗어난 유일한 신라의 왕릉 경순왕릉
    경순왕릉 정면

    경순왕에 대하여...
    경순왕은 신라 제56대 왕으로 성은 김씨, 이름은 부로 문성왕의 6대손이며 아버지는 신흥대왕으로 추봉된 효종이고 어머니는 헌강왕의 딸인 계아태후이다. 927년 후백제 견훤의 습격을 받아 경애왕이 승하한뒤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의 정책과 신라의 민심은 난폭한 견훤보다 오히려 왕건 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931년 왕건의 알현이 있었는데 수십일을 머물면서 왕건은 부하군병들에게 정숙하여 조금도 범법하지 못하게 하니, 왕건의 시녀들은 전번 견훤이 왔을 때에는 시랑과 범을 만난 것 같았으나 이번 왕건이 왔을 때에는 부모를 만난 것 같다고 하였다.


    경순왕릉 측면

    - 신라를 평화적으로 고려에 넘겨주고
    935년 후백제의 잦은 침공과 각 처의 군웅할거로 강토는 날로 줄어들어 국가기능이 마비되자 신하들과 더불어 큰아들 마의태자의 반대를 무릅쓰고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935년 평화적으로 신라를 고려에 넘겨주고 재위 8년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이때 막내아들 범공은 화엄사에 들어가 중이 되었다.

    그가 백료를 거느리고 고려에 귀의할 때 향차와 보마가 30여 리에 뻗쳤다 하여, 훗날 왕건에 의해 태자의 지위인 정승공에 봉해지는 한편 유화궁을 하사 받았으며, 녹 1천석과 함께 경주를 식읍으로 받아 사심관으로 임명되었고 왕건 태조의 딸 낙랑공주와 다시 결혼하였다. 경순왕은 43년 후인 고려 경종 3년 (978)세상을 떠났으며 경순이란 시호를 받았다.

    경순왕릉 전경

    - 경순왕릉은 조선후기 양식, 화강암 재질
    경순왕릉은 조선건국 이후 오래도록 실전되었던 것을 1748년(영조 24) 감사 김성운과 첨정 김응호 등이 봉축하고 제사하였으나 6·25후 방치되었다가 1975년 사적으로 지정되어 지금의 형태로 정화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봉분은 원형의 호석을 두른 높이 3m, 둘레19.5m의 크기이고 곡장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봉분 전면에는 4각의 대좌위에 서 있는 표석(105×48×17cm)과 상석(103×44cm), 네면에 4각 화창과 팔각지붕형의 옥개를 얹은 장명 등이 직전상에 놓여져 있고 장명등 좌우에는 석양(105×50cm), 망주석(150cm)이 배치되어 있는데 모두 조선 후기의 양식이며 화강암 재질이다.

    경순왕릉은 신라의 여러 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경기도 내에 있는 것으로 옛 고랑포나루터 뒤편의 남방한계선과 인접한 곳에 잘 정비되어 있다.

    경순왕릉 제례의식

    무화재 관리정보
    - 문화재명 : 경순왕릉
    - 지 정 별 : 사적 제244호
    - 소 재 지 :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산 18-2
    - 지 정 일 : 1975. 6. 25.
    - 문화재현황
    찾아오시는길
    - 버 스 : 불광동 파주 적성하차 택시이용군부대초소경순왕릉
    - 자가용 : 자유로 백학면 장남면 고랑포리(324번도) 군부대초소 경순왕릉(군부대에서 신분증 확인 후 방문가능)